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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M] 모래로 쌓은 투명함

2023-12-04 584

모래로 쌓은 투명함

 

『유리건축』의 저자인 박선우(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 주위에 유리를 사용하지 않은 건축물은 없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도심 한복판에 서서 한 바퀴 빙 둘러보면 어느 방향에서든 고층의 유리 파사드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전에는 꽉 막힌 공간의 시야를 열어주고 공간을 쾌적하게 만드는 용도로 유리를 사용했다면 이제는 좀 더 다양한 형태와 기능으로 여러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유리는 목재나 석재처럼 자연으로부터 얻어지는 것도, 벽돌이나 콘크리트처럼 직접 건축이 가능한 기본 재료도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쾌적한 삶을 유지하는 데에는 빠지지 않고 쓰여 왔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경험을 확장하고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등 무궁무진한 일을 가능하게 하고자 발돋움하고 있다.

 





건축재료로의 시작, 창유리

 

‘빛나고 투명한 물질’을 일컫는 라틴어, 글라이숨glaesum에서 유래된 단어 유리glass는 지금처럼 단단하면서 투명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제작이 힘들어 사치품으로만 쓰이던 유리를 건축재료로 처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후 79년 인류가 처음으로 창을 쓰기 시작하면서다. 당시 창은 실내에서 활동하고자 빛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낸 구멍에 불과했다. 그 틈으로 비바람과 벌레, 새가 들어왔지만, 채광을 위해서는 막을 수 없었다. 이에 구멍의 크기에 맞춰 유리를 납작하게 만들어 끼운 것이 최초의 창이다. 물론 당시 기술력으로는 불순물을 제거하지 못해 불투명하고 투박했지만, 공간에 빛을 끌어들이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물질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생활의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

 

현재까지도 창의 재료로 유리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층 빌딩도 외벽은 모두 유리로 마감하고 투명도를 조절해 실내의 파티션으로도 쓰인다.

 





유리 커튼월의 시작

 

 

근대건축은 철근 콘크리트 기둥과 슬래브만으로 구조를 해결한 도미노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일정 부분 외피가 담당했던 하중으로부터 해방된다. 벽돌이나 돌을 쌓는 조적 방식이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창의 크기를 제한했다면 철근이 개발되고 기둥식 구조가 도입되면서 창을 자유롭게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1851년 영국은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주철과 판유리로 만든 수정궁을 선보인다. 이 초대형 온실은 철로 세운 뼈대에 미리 제작한 창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1.2m 규격의 유리판 30만 장 정도가 지붕과 벽을 감싼다. 수정궁은 빅토리아 시대, 산업혁명과 함께 발전한 영국 기술력의 집약체이자 유리 커튼월의 시초가 된다.

 





유리의 다양한 쓰임새

 

 

유리는 건물 외에 가구나 그릇의 재료로도 그 쓰임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유리가 많은 곳에 쓰이는 이유는 단연 투명함 때문이다. 불순물을 거르고 고온에서 녹인 유리는 속을 훤히 보여준다. 이는 우리의 오감 중 시각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안경과 망원경, 모두 투명했기에 사물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은 인공조명이 있어 실내에서도 일을 할 수 있지만, 전기를 발견하기 전에는 오직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에 의존했다. 전구가 낸 빛을 퍼지게 하는 것 역시 유리가 있어 가능하다.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밤낮으로 인간이 생활하는 데에는 유리의 역할이 지대하다. 차량, TV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에도 유리가 쓰인다. 이들은 쓰임에 맞게 특정 용도를 강화한다. 또렷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특히 중요한 차량유리는 왜곡에 관한 기준이 다른 건축 제품보다 더 까다롭다.

 





일상에서 만나는 유리

 

 

여러 모습으로 우리의 주변을 맴도는 유리는 건축용 제품처럼 외부 환경에 항상 노출되지 않아도 자주 사용하는 만큼 깨지지 않도록 내구성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또 쓰이는 환경과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유리는 식기다. 유리 그릇은 냉장고에 넣거나 전자레인지, 오븐에 데우는 등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에서 사용된다. 때문에 온도 변화에 버틸 수 있도록 내열성을 갖춰야 하며 주로 일반 유리, 강화유리, 내열유리 세 종류로 만든다. 일반 유리는 충격과 온도 변화에 약해 찬물과 뜨거운 물을 번갈아 담으면 깨질 수 있다. 실온에서 음식물을 담는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음식을 담는 그릇은 열변화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매일 보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쓰이는 유리는 쉽게 깨지지 않도록 내구성이 좋으면서 휴대하기 간편하도록 가벼워야 한다. 때문에 건축용으로 쓰이는 강화유리를 이온 치환 방식으로 개량해 사용한다. 유리의 성분 중 하나인 나트륨 대신 칼륨을 채우면 칼륨은 나트륨보다 분자가 크기 때문에 적은 양으로 강도를 높일 수 있다. 이온 치환한 유리는 전도성 물질을 화학적으로 부식하는 에칭etching 작업을 통해 미세한 회로를 만들어 반응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코닝Coning사의 고릴라 글래스Gorilla glass가 있는데, 유리의 투명성을 유지하면서 플라스틱처럼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2007년 애플apple사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해 현재 삼성의 스마트폰, 노트북에도 쓰이고 있다.

 





가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유리는 건물이나 차에도 쓰이는 강화유리로, 적절한 강도와 내구성을 지녀 목재나 석재 등 타 재료의 표면을 보호하는 용도로 쓰인다. 고온에서 열을 가하면 휘어지는 성질을 통해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으니 완제품의 가구도 가능하다. 테이블의 경우 식탁 면을 불투명하게 처리해 식사할 때 시야가 방해되지 않도록 하기도 한다. 또 필름을 이용하면 형형색색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유리 가구 자체로 오브제적인 느낌을 주지만 지저분해 보이는 것도 한순간이다. 꾸준히 관리하지 않아 음식물이나 먼지가 뭉쳐서 굳어지는 일이 반복되면 세제로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생길 수 있다. 유리 위에 물건을 놓을 때는 코스터나 받침을 활용하고 얼룩이 생기면 즉시 젖은 천이나 물티슈로 닦거나 유리 전용 세제를 이용해 정기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차량용 유리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유리의 왜곡과 투명도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사고가 나더라도 사용자가 다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따라서 위치에 따라 다른 유리를 사용해 운전자와 탑승자를 보호한다. 전면 유리는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된다. 파편이 떨어지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필름을 적층한 접합유리를, 측면과 후면, 선루프에는 파손되어도 작은 조각으로 깨져 탑승자가 다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도록 열처리한 강화유리를 사용한다.

 





유리, 기술을 더하다.

 

 

유리의 원료는 고온에서 녹으면서 분자가 불규칙하게 배열되는데 냉각하는 과정에서 규칙성을 갖지 않고 그대로 굳어져 역학적으로는 동결된 액체 상태를 띤다. 이는 투명함을 갖게 하는 고유의 특징이며 최근에는 이에 기술을 더해 성능을 높인 유리가 등장하고 있다. 특수한 유리를 개발함에 따라 많은 것들이 가능해졌고 여전히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는 중이다.

 





한글라스는 실내에 유입되는 태양열을 감지하여 자동으로 실내 조도, 태양열 취득량을 제어하는 세이지 글라스Sage Glass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열을 많이 받으면 전기자극에 의해 이온이 이동하면서 투명도가 달라진다. 시간, 계절, 태양 고도의 일조량에 맞춰 차폐력을 갖기 때문에 건물 외관의 커튼월에 적용하면 실내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테슬라Tesla사의 솔라 루프 글라스 타일Tesla Solar Roof Glass Tile은 태양광을 저장하고 전기로 대체해 사용할 수 있다. 빛에서 흡수한 광자photon가 태양열 저장 전지 내부의 전자와 결합하면서 전하가 발생하고 이것이 일상에서 쓰이는 전력을 대신한다. 전기로 바꾼 에너지는 전지에 저장되며 수요에 따라 발전량을 조절할 수 있어 개인용 주택은 물론, 업무 공간과 상업 공간에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유리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명지대학교 기계공학과 정상국 교수팀은 전기 습윤 패턴을 이용해 유리 표면의 빗물이나 먼지를 자동으로 제거하는 커버 유리를 개발했다. 차량의 ‘눈’ 역할을 하는 소형카메라가 비나 먼지의 오염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도록 전류를 흘려보내 표면을 깨끗하게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표면에 투명 전기회로 패턴을 새기고 전기적 신호를 가하면 카메라 유리 표면의 빗물이 진동하며 아래로 흐른다. 아직 적은 면적이지만 확대된다면 드론이나 차량의 전면 유리, 건물에 적용할 수 있다. 도쿄 대학교의 타쿠조 아이다Takuzo Aida 교수는 파손된 유리를 복구하는 신소재를 개발했다. 새로 개발된 소재는 깨진 단면을 상온에서 1~6시간 맞대면 손상 부위가 회복되는 유리로, 폴리에테르 티오우레아polyether- thioureas라고 불리는 폴리머polymor를 이용했다. 이 폴리머는 표면이 절단되었을 때 가장자리를 21°C에서 30초 동안 맞대면 강한 시트를 형성해 깨진 부위를 이어준다. 자가복원self healing에 대한 시험은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연구에서부터 진행되어 왔고, LG에서 2015년 출시된 지플렉스2G Flex 2는 실제로 후면에 코팅하기도 했다.

 




미래의 유리 건축

 

유리 건축물이라고 하면 단순히 입면에 사용된 사례를 떠올리지만, 입면과 지붕이 통합된 자유 형상free-form으로 많이 건축되었고 앞으로는 더 늘어날 것이다. 자유 형상을 계획할 때는 건축가의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구조적인 면을 더욱 고려해야 한다. 이중 곡률을 갖는 건축물은 삼각형

 

그리드로 분할해 원하는 곡률을 디자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접합점이 2차원적이 아니고 3차원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하다. 건축가가 파사드와 지붕이 통합되는 곡면 건축물 형태의 쉘구조와 막구조 같은 외양에 투명성을 원한다면 어떠한 재료를 선택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클 것이다. 대안은 ETFE에틸렌 테트라플로로 에틸렌, Ethylene Tetra "uoro Ethylene,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와 유리가 될 것이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장차 건축재료 유리의 본질적인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그것은 유리보다 40% 가볍다는 장점 이외에 놀랄 만한 탄성을 가지고 있다. 반투명한 폴리카본네이트는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투명한 유리를 사용했을 때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 블라인드가 설치되어야 하지만, 폴리카보네이트는 간접조명의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색상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건축가가 원하는 야경 분위기를 쉽게 계획할 수 있다. 반면에 UV-자외선에 쉽게 변질된다.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는 지붕이나 굴곡진 입면은 투명성을 잃을 수 있어 건축가가 원하는 콘셉트를 달성할 수 없다.

 




기술은 항상 필요에 따라 발전되어왔다. 미래의 유리는 어떠할까? 누구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규모와 무관하게 모든 건축물에서 유리는 예외 사항이 아니다. 또한 단지 커튼월에 한정되어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분야의 구조물, 나아가 일상 생활에 사용될 수 있다. 때문에 단순 마감재 또는 구조재로서의 재료뿐 아니라 커튼월을 지탱하는 후면 구조나 조인트의 디테일과 병행해서 발전되어야 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경제적인 면과 에너지 절약에 대한 문제도 고려해야 진정한 미래가 있을 것이다. 


* 원문 및 작성 : 감매거진 (garm.8ap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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