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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M] 다양하게 활용되는 종이의 면

2023-12-28 632

다양하게 활용되는 종이의 면

누구나 생활 속에서 종이를 만난다. 노트에 글자를 끄적이고, 책과 신문을 읽으며 세상을 만나고, 택배 박스를 뜯어 주문한 물건을 확인한다. 어찌 보면 종이는 일상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재료다. 역사적인 순간은 늘 기록으로 전해졌고 이를 가장 오랫동안 책임져 온 것은 다름 아닌 종이였다.



 

 

 




종이의 탄생

순간을 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여러 기록 도구를 만들었다. 그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탄생했고 오랜 시간을 인류와 함께해 왔다. 그렇다면 기존의 기록 도구와 어떤 점이 다를까?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종이는 ‘식물성 섬유를 원료로 하여 만든 얇은 기록 도구’로, 섬유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그 의미에 부합하는 소재가 처음 등장한 때는 105년 중국 후한시대이다. 당시 문신이었던 채륜은 나무껍질과 오래된 그물, 천 조각 등 저렴하면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모은 다음 곱게 갈아내어 그늘에 말렸다. 그 결과 원료로부터 잘게 분해된 섬유가 얼기설기 얽히면서 천 모양의 얇은 형체를 만들었다만들었다. 이것이 최초의 종이인 채륜지다. 이후 종이는 빠르게 확산했고, 16세기에는 당시의 기술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를 기점으로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던 제지 공정이 조금씩 기계화되기 시작한다. 종이가 확산하면서 정보를 전하는 매체가 다양해졌고 자연스레 기록물을 만드는 인쇄산업도 더불어 성장한다. 종이는 정보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 매체의 특성에 적합한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종이의 제조 과정 
먼저 성형을 통해 종이의 형상을 만들고 펄프에 충전제를 비롯한 여러 약품과 물을 고루 섞은 다음, 헤드박스라는 기계를 이용해 와이어 망 위에 얇게 분사한다. 사출이 끝나면 프레스로 압착해 표면을 평활하게 만들고 수분을 말린다. 이후 드라이어를 통과하며 펄프에 남아있는 수분을 증발시키는 건조 작업을 거친다. 천천히 오래 건조할수록 원료가 뭉치지 않고 균일하게 퍼지면서 지층을 고르게 형성한다. 종이의 표면에 전분을 코팅해 섬유 사이에 있는 미세한 공극을 메우고 이를 다시 한번 더 건조하여 남은 수분을 제거한다. 이렇게 완성되는 지종이 백상지다. 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종이에 코팅액을 도포해 표면의 질감과 평활도를 개선하는 가공 작업은 한쪽 면에 공정을 두 번 거치면 더블 코팅, 한 번만 하면 싱글 코팅이라 한다. 종이의 매끄러움과 광택을 높이는 슈퍼 캘린더 공정을 통해 120~150 C의 뜨거운 롤로 다림질하듯이 종이를 눌러 조직을 더 치밀하게 한다. 이 과정을 여러 번 거칠수록 광택이 강해진다. 정해진 규격대로 재단과 포장 제조가 끝난 종이는 주문에 맞춰 시트 형태로 자르거나 그대로 롤로 감아 공급한다.


 

 

 



적용 분야를 넓히는 종이
종이는 기록의 도구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오늘날에는 포장산업에서 가장 활발하게 쓰인다. 시장의 흐름을 바꾼 데에는 골판지의 영향이 컸다. 1871년 알버트 존스가 물결 모양의 골이 완충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으로 포장재로 쓰이기 시작한다. 그는 골 모양의 종이를 만들어 특허를 받았고, 이것으로 병이나 등유 램프 등 유리 소재의 제품을 감쌌다. 골판지는 당시 주요 포장재였던 패브릭보다 더 안전하게 물건을 보호했고 완충용으로 사용하던 톱밥보다 위생적이어서 크게 환영받았다. 골이 찌그러지면 충격에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있었지만, 1874년 올리버 롱이 위아래에 판지를 감싸는 방식으로 보완하면서 대표 포장재로 자리매김했다.​


 

 

 




공간에서 발견하는 종이 자재

종이는 공간에 빈번하게 쓰이는 재료가 아니다. 그러나 뛰어난 가공성과 유연한 물성은 건축자재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이러한 특징에 일찌감치 주목해 종이 자재를 개발하기도 했다. 벽지는 실내 벽이나 천장에 바르는 마감재로 소재가 유연한 덕분에 다채로운 형상의 면을 감쌀 수 있다. 또 원지 위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제작해 공간에 색과 패턴을 더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로 벽지 원지에 다른 소재를 덧붙이거나 표면을 코팅해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두 겹의 원지를 붙여 만든 합지벽지와 PVC를 코팅한 실크 벽지가 있다. 종이 보드는 잘게 분해한 재활용 판지에 펄프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잔류물을 섞고 열과 압력을 가해 굳힌 판상재이다. 펄프의 성분인 리그닌이 접착제처럼 입자를 강하게 잡아주어 자재를 단단하게 만든다. 주로 천장이나 벽의 마감재로 사용하고 나사못을 박거나 접착제를 발라 고정한다.

 







섬유강화 시멘트 보드는 셀룰로오스를 섬유 형태로 가공하고 포틀랜드 시멘트와 규사, 물을 혼합한 뒤 압력을 가해 만든 판재다. 온도 변화에 따른 수축 팽창이 적고 습기에 강해 뒤틀리지 않는다. 덕분에 주방이나 욕실처럼 물을 사용하는 공간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공 과정에서 먼지가 많이 발생하고 모서리가 쉽게 깨진다. 셀룰로오스 단열재는 폐지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에 전분과 폴리프로필렌 수지를 혼합해 만든 직육면체 모양의 단열재이다. 화학 물질을 첨가하는 일반적인 단열재와 달리 식물성 물질을 원료로 하여 친환경적이다. 쓰임을 다한 후에는 재생가능한 성분만 추출해 재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프레임의 크기에 맞춰 하나하나 재단해야 하고 전문 설비를 써야 해 작업이 번거롭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보다는 축열 성능이 약한 목조주택의 단점을 보완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페이퍼크리트는 포틀랜드 시멘트와 물물, 재생펄프를 혼합해 만든 콘크리트로,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인 시멘트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개발됐다. 펄프가 섬유처럼 기능해 기존의 콘크리트보다 인장력과 축열 성능이 우수하다. 그러나 압축강도가 낮아 수직부재보다는 수평부재에 쓰는 것이 좋다. 판지를 이용해 만든 종이 관은 다양한 크기 로 생산할 수 있고 내화성이 강하다. 또 강도가 높아 구조재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일본의 건축가 시게루 반은 종이 관을 이용해 임시 대피소, 성당, 파빌리온 등의 건축물을 종이로 구현하기도 했다.​

 

 







약자를 배려하는 종이 건축 
종이 건축하면 떠오르는 건축가가 있다. 바로 시게루 반이다. 그는 퐁피두 센터 메츠와 같은 건축물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지만, 임시 대피소나 진료소처럼 약자를 위한 공간을 짓는 데에도 힘쓴다. 종이관은 그가 꿈꾸는 건축을 실현하는 재료다. 처음 시게루 반이 종이 관을 선택한 것은 목재와 색이 비슷하면서 질감이 부드럽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단순한 계기로 시작된 종이 건축은 오늘날 자연재해나 전염병, 전쟁 등으로 갑작스럽게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안락한 대피소가 되어준다.​

 

 







1994년 르완다 내전에서 종이 관을 이용한 대피소를 선보인 이후 1995년 고베 대지진의 페이퍼 로그하우스, 2011년 한신 대지진의 페이퍼 파티션까지 재해 지역에 연이어 대피소를 설치하며 형태와 용도를 발전시켰다. 특히 2011년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진도 6.3의 지진으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이 무너졌을 때에는 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임시 성당을 짓기도 했다. 컨테이너의 철판을 해체해서 벽을 세우고, 그 위로 직경이 60cm인 종이 관을 사선으로 기울인 뒤 폴리카보네이트로 덮어 삼각형의 지붕을 만들었다. 관을 설치할 때는 6cm의 간격을 두어 공간에 빛을 끌어들이도록 했다. 종이 관의 모습이 두드러져 투박하게 느껴졌던 이전의 대피소와 비교하면 크라이스트처치 임시 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와 폴리카보네이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여타 종교 건축물처럼 성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시게루 반은 자신의 저서 «행동하는 건축 »에서 종이 건축의 지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종이로 만든 건물도 사람이 좋아하면 상설 건물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콘크리트 건물도 임시 건물이 될 수 있다."

 

 







오래된새로움, 한지의 가능성

한지는 닥나무 껍질의 섬유를 떠서 만든 한국의 전통 종이다. 생활환경이 변하고 공장에서 대량생산 하는 서양의 양지가 등장하면서 예전보다 사용이 줄었지만, 뛰어난 물성이 주는 가치는 여전하다. 한지는 기록하는 용도에 그치지 않고 건축이나 공예, 일상의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쓰였다. 여러 겹을 겹치고 옻칠을 하면 가죽처럼 단단해져 그릇이나 갑옷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지는 닥나무와 잿물, 닥풀 역할을 하는 황촉규 등 자연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친환경 소재다. 화학물질을 섞지 않아 인체에 무해하고 나무 펄프를 쓰지 않는 비목재 종이라 환경에도 이롭다. 또한 닥나무 섬유의 가늘고 긴 형상으로 인해 내부 조직은 수많은 공극을 가지고 있다. 이 공극을 통해 수분이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실내의 습도를 조절하고, 공기를 품어 차음이나 보온 성능을 발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장점을 활용해 벽과 바닥, 창호 등 부위를 가리지 않고 집안 곳곳에 한지를 썼다. 온돌바닥에는 한지를 여러 겹 덧발라 바닥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온기를 전했다. 또한 유리가 없던 시절에는 창호지로 사용하며 바람을 막고 실내에 빛을 들였다. 현재 국내에서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제작하는 공방은 모두 열아홉 곳이다. 이 중 아홉 곳에서 장판이나 벽지로 쓰는 인테리어용 제품을 생산한다. 한국산업표준에서는 창호지와 장판지로 나누어 건축용 한지의 품질 기준을 정하고 있다. 장판지의 경우, 닥섬유를 60% 이상 함유한 것을 1급, 30% 이상은 2급, 30% 미만인 것은 3급으로 구분하고 강도와 평량, 치수 등의 기준을 안내한다.

 

 







종이의 현재와 미래
시대에 따라 재료에 요구되는 역할은 꾸준히 변화한다. 디지털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종이 역시 다른 방면으로 쓰임을 넓혀간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는 접거나 감싸는 방식으로 형태를 바꾸는 ‘웨어러블’과 ‘플렉서블’을 실현하는 꿈의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업계에서는 종이를 반도체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김재환 교수는 종이에 전기를 
가했을 때 잘게 떨리는 성질을 활용해 생체모방 종이작동기종이작동기(EAPap, Electro-Active Paper)를 개발했다. 이 소재는 움직임을 구현하면서 차지하는 면적이 작아 초소형 로봇과 같이 크기가 작은 기계에 안성맞춤이다.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연구팀은 종이 소재의 광전소자를 개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다이오드와 같은 광전소자는 형태가 고정적이어서 웨어러블을 구현하는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종이로 만든 광전소자는 유연해 자유자재로 구부리거나 접는 것이 가능하다. 더불어 폐기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 친환경 반도체를 구현하는 재료로 주목받는다.




* 원문 및 작성 : 감매거진 (garm.8ap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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