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미디어 트렌드
최근 10년 저널리즘이라는 단어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뉴미디어 저널리즘, 브랜드 저널리즘, 데이터 저널리즘 등 다변화된 미디어는 뉴스를 수용하는 방법과 형식을 다채롭게 만들었고 미디어 스타트업은 새로운 포맷의 저널리즘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뉴 미디어의 새로운 어법, 전통적인 래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의 혁신, 그리고 미디어가 되고자 하는 작은 브랜드들의 노력까지, 저널리즘의 해석과 의미는 다양해졌다.특히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가짜뉴스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와 저널리즘의 위기를 논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작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안 미디어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또한 콘텐츠를 통해 불가피하게 접하는 광고를 거부하는 독자들의 까다로운 요구와 불특정한 대상을 타깃으로 광고하는 기존의 관습에서 문제를 느낀 브랜드의 입장까지 미디어와 광고의 관계 역시 첨예해졌다.뉴미디어 저널리즘‘뉴스는 역사의 초고’라는 근사한 격언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블로그,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플랫폼이 더 충실한 기록자가 되었다. 미디어 환경이 이 격언의 변형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기자가 역사의 초고를 생산하는 시대가 아니며 정보의 보급과 파급은 인플루언서의 영향을 받는다.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이를 두고 ‘Journalism is now the second draft of history’라고 선언했다. 즉, 이제 기자들이 쓴 기사는 역사의 두 번째 초안이라는 말이다. 1905년 당시만 하더라도 기자가 초고를 쓰면 역사가가 조립하고 해석하는 역할이었다면, 2020년은 ‘시민’과 ‘유저(user)’가 함께 초고를 쓴다. 그리고 기자는 과거의 역사가처럼 현상을 해석하고 분석해 에디팅하는 일에 더욱 관여하게 된다.New York Times - Snow Fall대표적인 사례인 <뉴욕타임즈>의 인터렉티브 기사 ‘Snow Fall’은 텍스트 뿐 아니라 그래픽, 사진, 동영상을 첨가한 형태의 뉴스 콘텐츠로 주목을 끌었다. 독자는 시각적인 이미지와 함께 페이지를 스크롤하고 클릭하며, 플레이 할 수 있었고, 생동감 있는 읽기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다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따라 기사란 하나의 콘텐츠로 내용뿐 아니라 형식과 표현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러한 시기와 맞물려 이후 전 세계 언론사에서는 ‘뉴 미디어팀' ‘뉴 콘텐츠팀' 등을 결성했고 인터랙티브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내걸 플랫폼이 부재하고 독자들은 모바일 환경을 위주로 뉴스를 접하다보니 상당한 비용과 고 오랜 제작 기간 동안 만들어낸 공력에 비해 그 반응은 미적지근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쉽게 접하고 빠르게 습득하도록 다듬어진 미디어 환경에서 그만큼 공들여 만든 기사는 그만큼 중요하고 기록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인터랙티브 기사를 발행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단백질 유전자를 보여주는 기사 단백질로 뒤덮인 나쁜 뉴스:코로나바이러스 게놈 속으로’, 미국 시장 선거 결과 등 최근까지도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인터렉티브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New York Times이렇게 기자들이 에디터의 역할을 하나 둘 실행할 즈음, 저널리즘 트렌드에는 유료 구독이라는 새로운 모델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 역시 <뉴욕타임스> 였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뉴욕타임즈>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은 종이 신문 구독자는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온라인 구독이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광고주들은 전통 매체보다는 온라인 매체와 인플루언서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 그 배경이다. <뉴욕타임스>는 광고 관련 인력을 대폭 줄이고 데이터 및 디지털 전문 기술자들로 재구성하며 ‘Snow Fall’같은 인터랙티브 기사를 매주 발행했다. 또한 탐사보 도와 오피니언 코너를 대폭 강화해 콘텐츠의 수준을 확 끌어올렸다. 피상적인 소식을 전하기보다는 사건의 전말을 심도 깊게 파헤치고 전문가의 오피니언을 전하는 플랫폼으로 전환한 것이다. 결과는 자연스럽게 유료 구독자 증가로 나타났다.이렇게 <뉴욕타임스>를 시작으로 유료 구독 서비스가 위기에 빠진 저널리즘을 구조할 새로운 솔루션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기 시작할 즈음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형식, 뉴스레터가 점점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Substack대표적인 플랫폼인 ‘서브스택(Substack)’은 개인이 뉴스룸이 되어 뉴스레터를 발행할 수 있게 서비스하는 플랫폼으로 유니콘 기업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막대한 투자를 유치해 <뉴욕타임스>에 기고하던 필자를 서브스택으로 끌어들였고, 쟁쟁한 래거시 미디어와 경쟁 구도를 만들어낼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래거시 미디어가 가진 탐사팀, 취재진을 따라잡지 못하더라도 관점을 강조한 ‘해설'과 ‘분석'이라는 태도와 다양하고 니치한 영역의 소식을 전하는 미디어 플랫폼으로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그리고 서브스택과 같은 뉴스레터 플랫폼의 약진은 페이스북이 론칭한 불레틴(bulletin), 트위터가 인수한 뉴스레터 플랫폼 리뷰(Revue) 등을 통해서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서브스택 유저들이 뉴스나 내용보다는 발행인에 초점을 맞추고 구독 버튼을 누르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즉 영향력 있는 개인, 인플루언서를 팔로우 하는 속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콘텐츠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게 인식되고, 인물에 따라 정보가 소비되고 효용성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데이터 저널리즘믿고 따르는 사람, 설득력있는 사람, 매력적인 사람,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사람을 팔로우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뉴스레터건, 유튜버이건 구독 리스트에는 주관과 취향이 깃들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정보에 대한 판단에도 양극화가 심화된다. 지구 평면설을 믿거나 달 착륙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장문의 글을 읽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쉽고 간편하게, 짧고 명확하게'가 관용이 되어버린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는 객관적이고 명료한 정보 전달이 1순위다. 이 모두를 해소할 데이터 저널리즘이 필요한 이유는 이렇게 명확하다. 3초 만에 이 글을 읽을 지 말 지 결정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각화한 콘텐츠는 문자성 정보보다 60,000배 빠르게 인식한다. 따라서 데이터 저널리즘은 긴급한 재난 상황에 아주 적절하다.전 세계인들이 데이터 저널리즘의 효용을 가장 밀접하게 경험한 것은 다름 아닌 팬데믹 상황에서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와 확진자 수에 전 세계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던 2020년 초, 너무나 많은 뉴스가 쏟아져 나왔고 모두가 민감한 상황에서 데이터는 확실한 사실을 가장 조용히 전달한다. 특히 단순히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보가 함께 결합했을때 함의하는 내용은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당신의 이웃이라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사망자의 숫자가 점점 무디게 다가올 때 다시금 그 숫자를 실체화한 사례다.The Washington Post이외에도 코로나 사망자의 이름으로 1면을 채운 2020년 5월 24일 <뉴욕타임스> 1면 기사 ‘미국 사망자 10만명 육박, 헤아릴 수 없는 손실(An Incalculable Loss)’역시 데이터 저널리즘이라는 관점으로 해석 가능하다. 매체는 1,000이라는 숫자 대신 이름을 가득 적어 피해자를 추모하면서 이 1,000명은 미국 사망자 수의 1%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이러한 표현 역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실과 정보, 그리고 메시지를 한 순간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오늘날의 저널리즘이자 인포그래픽이다.브랜드 저널리즘저널리즘은 언론과 미디어에만 따라붙는 속성이 아니다. 2010년대, 브랜드 저널리즘은 코카콜라의 <저니>, <레드불> 등 한동한 브랜드 저널리즘의 사례를 언급하며 모든 기업과 브랜드는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 바람에 지금까지 많은 브랜드는 직접 뉴스룸을 운영하면서 브랜드 소식과 전하고자 하는 브랜드 가치를 내보냈는데, 사용자 경험을 완성도 높게 유지하기에는 브랜드의 톤앤매너와 수준 높은 퀄리티, 감각적인 변주로 자주 놀라움을 안겨줘야 했다. 따라서 글로벌 패션하우스 영역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새로 부임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미디어 정비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하고 리뉴얼 오픈한 구찌 웹사이트를 떠올려보면 된다. 이로써 가장 젊은 세대에게 온라인에서의 브랜드 경험을 가장 활력 있게 어필한 브랜드가 됐다.Acne Paper지금도 주목받는 패션하우스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미디어를 강화해 개성있는 브랜딩을 전개한다. 우선 '아크네스튜디오’가 올해 자체 프린트 미디어 <아크네 페이퍼>를 부활시킨 것이 화제다. <아크네 페이퍼>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1년에 2회 발간했던 타블로이드 잡지로 상업적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않은 독립 매체 콘셉트를 내건 바 있다. 아크네 브랜드의 자체적인 목소리보다는 문학, 미술, 사진, 패션, 음악, 무대, 연예 등 범 예술적 이슈를 다루며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런 <아크네 페이퍼>가 7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 <아크네 페이퍼>의 편집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마스 페르손이 직접 에디터로 참여해 데이비드 베일리 등의 사진작가, 디자이너 킴 존스의 인터뷰, 사라 무어 등의 에세이로 구성했다.Bottega Veneta한편 가장 높은 주가를 올리고 있는 보테가 베네타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하고 온라인 매거진 <이슈드 바이 보테가>을 론칭해 눈길을 끌었다. 1년에 4번 발행하는 계획으로 첫 호에는 래퍼 ‘미시 엘리엇’, 프리 러닝 스쿼드 스토러, 디자이너 ‘바바라 훌라니키’가 참여했으며 위트와 감각의 최전선을 건드리는 이미지로 보는 맛을 더했다. 틀에 박힌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벗어나 보테가 베네타만의 크리에이티비티를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 탁월했다고 평가받았다.이와 같이 인터넷 시대를 넘어 메타버스 시대로 접어드는 가운데, 빠르게 발전하는 미디어 트렌드의 변화에 지속적으로 주목하며 소비자와 연결되고 소통해야 할 것이다.자료제공: 스타일러스코리아, New York Times, Substack, Acne Paper, Bottega Veneta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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