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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재앙 그 경계에서, 플라스틱

2023-12-21 557

축복과 재앙 그 경계에서,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그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지금까지 약 83억t에 달하는 제품이 생산되었다. 목재나 석재, 금속에 비하면 사용 기간이 터무니없이 짧지만 어느 재료보다 빠르게 발전해 지금은 모든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소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많은 플라스틱은 어디에 쓰이고 있을까?

 

 



미국의 과학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서 공개한 ‘2017년 응용 분야별 전 세계 플라스틱 소비량 분포’에 따르면, 1위는 1억 1500만t으로, 30%를 차지한 포장 산업이다. 그 뒤를 잇는 것이 17%를 차지한 건축과 건설 분야로, 소비량이 약 6410만t이다. 플라스틱은 종류가 다양하고 다른 재료와 외관이 유사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소재는 탄성과 인장강도가 우수해 일찍이 건축에 적용됐다. 특히 가볍고 성형이 쉽다는 장점은 많은 건축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일본의 건축가 SANAA는 도쿄 오모테산도에 자리한 디올 콘셉트 스토어, 스위스 비트라 캠퍼스의 생산공장에 흰색 아크릴을 적용해 경쾌함을 표현했다.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해 빛이 투과되는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유 오피스 스테이션 니오(2018)를 설계한 아키모스피어 박경식 대표는 “플라스틱은 존재감이 강하지 않지만 공간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한층 세련된 분위기를 만든다”고 말한다.

 

 



플라스틱은 열을 가했을 때의 상태 변화에 따라 열경화성과 열가소성으로 구분한다. 둘은 고분자 구조, 물성, 재활용 여부 등 다양한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열경화성 플라스틱은 고분자가 3차원 그물 구조로 얽힌 플라스틱으로, 고분자를 연결하는 사슬의 결합력이 강해 열을 가해도 녹지 않고, 기체화되거나 가루 같은 고체 상태로 변한다. 경도, 강도, 내화학성이 높아 공업용 재료로 활용한다. 하지만 열이나 압력을 가해도 녹지 않고, 재활용의 원료가 되는 펠릿을 만들기 어려워 대개 일회성으로 사용한다. 열가소성 플라스틱은 고분자가 선이나 나뭇가지 모양으로 결합한 플라스틱이다. 고분자를 잇는 사슬 간의 상호작용이 약해 유리 전이온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녹고, 냉각하면 고체 상태로 돌아간다. 주로 고온에서 유동성을 갖게 한 뒤 압력을 가해 뽑아내는 압출 방식으로 성형한다. 수명이 다해도 녹여서 다른 제품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사용 가능한 온도 범위에 따라 100°C 미만을 범용 플라스틱, 100°C 이상, 150°C 미만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150°C 이상을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구분한다.

 

 



피부가 되는 얇은 재료

플라스틱은 성형성이 좋아 1mm 이하의 두께로 종이보다 얇게 만들 수 있다. 또 기계적, 화학적 성질이 우수해 건축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면재와 판재, 코팅재로 쓰인다. 일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폴리에틸렌,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에폭시 등이 꼽힌다.

 

폴리에틸렌은 충격에 강하고 내한성이 양호해 각종 보관 용기의 소재로 많이 쓰인다. 또 전기절연성이 뛰어나 전선 피복, 레이더 등 가전제품의 고주파 전열 재료에 두루 사용된다. 그 밖에도 내수성, 내화학성이 뛰어나고 성형하기 쉬워 산업에서는 파이프, 특수섬유, 탱크의 중공 용기, 비닐하우스나 농업용 필름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유동성과 가공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PET는 투명도가 높고 광택이 풍부하다. 또 기계적 성질이 우수하고 전기적 성질과 내후성이 좋아 표면 품질이 중요한 분야에 적합하다. 하지만 인장강도와 수분 흡수율이 낮아 대부분 병이나 포장 용기로 사용한다. 내충격성과 내열성은 떨어지고 높은 온도나 장기간에 걸쳐 산과 알칼리 물질과 접촉하면 쉽게 변형된다. 에폭시는 휘발 물질이 발생하지 않고 기계적 성질과 전기절연성이 매우 우수하다. 그러나 자외선에 약하고 경화 시간이 길어 경화제를 섞어야 한다. 플라스틱을 건축자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재료를 단독으로 사용하기보다 여러 재료를 혼합하거나 조합해 각각이 지닌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한다.




플라스틱을 적용한 공간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플라스틱은 일회용품이나 식품 용기, 비닐봉지 등으로 대부분 가볍고 쉽게 구겨진다. 그러나 일부 플라스틱은 강도가 높고 탄성이 우수해 가구, 실내 파티션 등으로 건축에서 내구성이 중요한 부위에 활용된다. 그중에서도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플라스틱 자재는 PVC 바닥재다. PVC 바닥재가 대중에게 처음 소개된 것은 1933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로 발표 당시 내구성이 우수하고, 다양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또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탄성 덕분에 상업 공간을 비롯해 병원, 학교에 쓰였고 오늘날에는 목재, 석재 등 천연소재의 무늬와 질감을 모사해 주거 공간의 대표 바닥재로 자리 잡았다. 그 밖에도 테이블 표면을 보호하는 필름으로 폴리에틸렌을, 좀 더 단단하고 가벼운 상판을 만들기 위해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PMMA를 사용하는 등 활용 범위를 조금씩 넓히고 있다.

 

  

 



한편, 플라스틱은 외장재로도 활용도가 높다. 렘 콜하스는 러시아의 개라지 현대미술관, 콘크리트 인 두바이 프로젝트에 폴리카보네이트를 적용했다. 두 곳 모두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갤러리,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꾼 사례로, 입면에 5m가 넘는 길이의 패널을 적용했다. 여기에 슬라이딩 방식을 접목해 입면을 여닫으며 내외부를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재료 특유의 질감은 낮에는 금속을 닮은 외관으로, 밤에는 공간의 실루엣을 보여주며 건물을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바꾼다.

 



플라스틱의 역습

인류는 끊임없이 자원을 소비하고 배출한다. 그중에서도 플라스틱은 ‘생산에 5초, 소비에 5분, 분해에 500년’이라는 수식어처럼, 만들기는 쉽지만 사라지기는 어려워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는다. 플라스틱은 일상에서 섬유, 수지, 고무 등 다양한 모습으로 쓰인다. 플라스틱 컵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일회용 용기에 담긴 도시락을 먹는다. 스티로폼과 랩으로 포장된 택배를 주문하고 하다못해 화장품, 머리끈처럼 작은 물건도 비닐로 포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비되는 양의 대부분은 분해되지 못하고 섬처럼 쌓여 인간과 환경을 위협한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플라스틱이 모순적으로 환경문제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일례로 83억t의 플라스틱 중 완전히 분해된 것은 고작 20억t뿐, 나머지 63억t은 폐기물로 남아 바다를 떠돌고 매립지에 쌓여있다. 가격이 저렴하면서 대량생산이 유리하고, 성형이 쉽다는 장점에 기대어 분해가 어렵다는 단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나친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친환경 플라스틱의 개발

이러한 친환경 문제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일상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은 단연 재활용이다. 재활용은 방식에 따라 크게 물질회수, 연료화, 유화 환원으로 나뉜다. 물질회수는 수명이 다한 제품을 작게 쪼개서 원료를 만들고 이를 재가공해 다시 제품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주로 PET나 파이프에 쓰이는 폴리에틸렌을 이용한다. 세 방식 중 공정이 가장 단순하지만 새로 만든 제품보다 품질이 낮다. 연료화는 폐플라스틱을 압축한 뒤 300~400°C에서 오랜 시간 가열해 석유 에너지를 만드는 방식이다. 주로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폴리스티렌을 이용하고 연료화 과정을 통해 얻어진 에너지는 제철소나 소각장에서 사용된다. 유화 환원은 고분자를 화학적 방법으로 분해해서 다시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방식이다.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많은 에너지가 들어 국내에서는 크게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분해 가능한 ‘바이오 플라스틱’도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미생물이 분해 가능한 성분을 원료로 해 자원이 순환하게끔 만든 물질이다.

 

 

 



이제 플라스틱은 ‘신이 내린 선물’이 아닌 ‘인류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플라스틱을 사용하지만 그것이 좋은 재료인지에 대한 물음에는 여전히 답할 수 없다. 환경을 고려한다면 소비를 줄여야 하는 재료임이 분명하나 한편으로는 플라스틱으로만 구현할 수 있는 성능과 분야가 있다. 이제는 ‘소비를 줄이자’는 1차원적인 해결책이 아닌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순환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 원문 및 작성 : 감매거진 (garm.8ap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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